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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에 해당되는 글 2건
2007. 4. 26. 19:39
봄비 - 인순이
떠나야할 그사람 (1981) - 인순이

봄비 - 인순이

01. 떠나야할 그사람
02. 다시 말해요
03. 석양
04. 봄비
05. 추억
06. 누가
07. 오솔길을 따라서
08. 가야지
09. 달님아
10.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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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아직도 오해되고 있는 소울 디바


인순이, 떠나야할 그 사람

1970년대 말 댄스 그룹 희자매의 리드 보컬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인순이는 1980년대가 되면서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던졌다 - 당시 인순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출신으로 솔로 가수가 된 비욘세(Beyonce)를 연상하면 된다. 솔로 가수로서 그의 출발은 매우 낙관적인 것이었다. 그는 실질적 데뷔곡으로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선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최고의 절창으로 기억된다. 펄 시스터스에서 조영남에 이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곡에 손을 대 보았지만 인순이의 버전을 능가할 만한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곡에서 그가 과시한 힘과 정열은 한국 음악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생산적일 수도 있었던 이 두 사람의 협력은 단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곡 이후 인순이의 음악 여정은 지극히 혼란스럽게 이어져 갔다. "밤이면 밤마다"로 반짝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1980년대 내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뽕짝에서부터 건전가요("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기억하는가?)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다 해봤지만 그 성과는 전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열린 음악회를 통해 그야말로 기적같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음악적 인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가창력 가수'라는 유감스러운 꼬리표가 그 증거다. 인순이는 한국에서 드물게 머리와 가슴과 목소리를 겸비한 가수다. 이런 그에게 단지 '목청으로 승부하는 가수'라는 일면적 평가는 절대로 정당하지 않다.
[출 처 : we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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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5. 15:43
떠나야할 그사람 (1981) - 인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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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할 그 사람 - 인순이

01. 떠나야할 그사람
02. 다시 말해요
03. 석양
04. 봄비
05. 추억
06. 누가
07. 오솔길을 따라서
08. 가야지
09. 달님아
10.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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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아직도 오해되고 있는 소울 디바


인순이, 떠나야할 그 사람

1970년대 말 댄스 그룹 희자매의 리드 보컬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인순이는 1980년대가 되면서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던졌다 - 당시 인순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출신으로 솔로 가수가 된 비욘세(Beyonce)를 연상하면 된다. 솔로 가수로서 그의 출발은 매우 낙관적인 것이었다. 그는 실질적 데뷔곡으로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선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최고의 절창으로 기억된다. 펄 시스터스에서 조영남에 이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곡에 손을 대 보았지만 인순이의 버전을 능가할 만한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곡에서 그가 과시한 힘과 정열은 한국 음악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생산적일 수도 있었던 이 두 사람의 협력은 단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곡 이후 인순이의 음악 여정은 지극히 혼란스럽게 이어져 갔다. "밤이면 밤마다"로 반짝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1980년대 내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뽕짝에서부터 건전가요("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기억하는가?)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다 해봤지만 그 성과는 전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열린 음악회를 통해 그야말로 기적같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음악적 인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가창력 가수'라는 유감스러운 꼬리표가 그 증거다. 인순이는 한국에서 드물게 머리와 가슴과 목소리를 겸비한 가수다. 이런 그에게 단지 '목청으로 승부하는 가수'라는 일면적 평가는 절대로 정당하지 않다.
[출 처 : we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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