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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16. 21:32
싫어 - 이정화

신중현과 덩키스 - 이정화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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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 이정화
1. 싫어
2. 봄비
3. 꽃잎
4. 먼길
5. 내일
6. 마음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기념비적 발걸음

1969 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펼쳐진 '트로트의 시대, 이미자의 독주 체제'는 1969년을 기점으로 흔들렸다. 펄 시스터즈의 "님아"와 "커피 한잔"(모두 레코딩은 1968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소울 가요들이 히트하며 트로트의 아성을 뒤흔들었고, 싸이키델릭으로 분류된 그룹 사운드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4일간 열린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4만 여명의 청중을 동원할 만큼 저변을 확대하고 있었다. 1969년, '소울 & 싸이키'로 명명된 물결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 무렵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가 (통기타/포크와 함께 표출되는) 청년문화를 예고하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메이저리그 스타로 등극했다면, 이 [싫어 / 봄비] 음반은 바로 그 메이저리거들을 키워낸 음악적 산파였던 신중현, 그가 지휘한 밴드들, 그리고 이제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될 마이너리그 스타 가수들의 등장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신중현이 이 시기부터 한편으론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주로 여)가수들을 조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라인업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싫어 / 봄비] 앨범은 신인 여가수 이정화의 데뷔 앨범으로도, 신중현이 이끈 5인조 밴드 덩키스(Donkeys)의 공식 데뷔작으로도 불린다. '누구의 몇 집' 식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의 모호한 성격을 대변한다. 기획에 있어서 이 음반은 신중현이 한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만든 대중적인 솔로 가수 앨범(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김정미 등의 음반)과, 신중현 자신의 그룹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밴드 앨범(애드 훠, 퀘션스, 엽전들 등의 음반)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이 '일반 무대'와 미8군 쇼 무대를 계속 오가며 활동했던 점, 록 밴드를 지향하면서도 캄보(전기 기타가 주도하는 소편성 연주 밴드)와 패키지 쇼(캄보와 보컬리스트와 무희로 구성된 소규모 쇼)의 그늘에 머물렀던 점이 드러난다. 이정화가 무대용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담은 커버는 이 음반이 패키지 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펄 시스터즈의 데뷔작의 '화사한 커버'와 비교해 보라. 펄 시스터즈의 음반은 피크닉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이 상큼하게 연출되어 있다).

음반 커버의 안쪽에 담겨 있는 덩키스와 이정화의 모습

애드 훠(Add 4), 블루즈 테트(Blooz Tet)의 해산 이후 신중현(리드 기타)은 1968년 후반기에 이태현(베이스), 김민랑(키보드), 오덕기(리듬 기타), 김호식(드럼)을 영입해 5인조 밴드 덩키스를 결성하고 미8군 무대에서 '노 아웃 쇼(No Out Show)'라는 패키지 쇼 단체를 이끌었다. 이 패키지 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인물이 이 음반의 주인공 이정화였다. '노 아웃 쇼'가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게 되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일반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1968년 말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둘 다 신중현의 창작곡에 덩키스의 연주로 녹음되었지만, 펄 시스터즈의 음반이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가수에 초점을 맞춘 반면(덩키스의 연주는 '반주'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밴드 솔로 가수 음반과 밴드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싫어 / 봄비]는 신중현이 당시 자신의 그룹 사운드(덩키스)를 통해 어떤 음악을 지향했는지를 좀더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정화와 덩키스가 이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싸이키델릭 록이었다. 물론 소울의 색채가 적지는 않은데, 첫 곡 "싫어"와 두 번째 곡 "봄비"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정화의 보컬은 당시 일반적인 소울 (여)가수들의 열창 스타일과 달리, '밋밋한' 느낌마저 준다(신중현이 당시 조련한 펄 시스터즈, 김상희, 김추자의 다소 허스키하고 당돌한 보컬과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이듬해 퀘션스(Questions)의 음반에 박인수의 보컬 버전으로 실려 히트한 "봄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수의 버전이 감정을 모두 투여하는 진한 소울 음색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이정화의 버전은 낭만과 폭발 대신 각 연주 파트가 어느 한쪽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된다. 이정화의 보컬은 감탄을 자아낼 만한 기교 없이 오히려 다소 불안정한 음정으로 덩키스의 연주에 묻혀 '흐른다.' 그래서 이정화의 "봄비"는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절정으로 인도한다. 이 곡을 싸이키델릭하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일 공산이 크다. 단지 키보드와 현악 세션 때문이 아니라.

이어지는 "꽃잎"은 좀더 완연하게 싸이키델릭적이다. 퍼즈 기타와 오르간이 장엄하게 나오다 잔잔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로 바뀌는 도입부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연주가 강조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일"에도 재현된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 곡은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출렁이며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잊게 만든다. 마지막 곡이자 LP의 B면 전체를 차지하는 "마음"은 신중현 식 싸이키델릭의 요체를 담고 있다. 퍼즈 기타가 리드하는 주제 리프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사이 총 16분 35초간 본격적인 '약물 여행'으로 이끈다. 이정화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을 수미상관으로, 중간에 즉흥 솔로 연주가 길게 전개되는 구조인데, 2분 47초부터 기타 솔로, 오르간 솔로, 베이스 기타 솔로, 드럼 솔로가 차례로 9분 가까이 전개된다. 특히 와와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7분 여간 펼쳐지는 신중현의 기타 애드립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즉흥 연주이다. "마음"은 음반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70년을 전후해 꽃피운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한 정수(精髓)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 커버의 축소판으로 나온 복각 CD

[싫어 / 봄비]는 당시 소울과 싸이키델릭의 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음반이다. 신중현이 만든 솔로 가수의 음반들이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그를 히트곡 제조기의 반열에 올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그룹 사운드의 음반은 앞으로도(엽전들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징조를 보여주었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될 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음반이 CD로 복각되어 재발매된 것은 한국 록의 잊혀진 역사 그림 중 퍼즐 하나를 끼워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 뒤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복각이다. 복각 CD의 커버나 케이스도 비닐 음반(LP)의 커버와 케이스의 축소판이어서 음반의 아우라도 최대한 살렸다. 그렇다고 속지까지 조잡하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은 필요하고, 비닐 원판에 비해 복각된 CD에 담긴 음원의 주행 속도가 미세하게 빠르다는 점은 옥의 티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사항이지만, 그것이 이 음반의 복각이 주는 의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싸이키델릭 록 음반이란 점에 주목할 수도 있고, 신중현이 당시 밴드의 지향점을 어떻게 레코딩으로 풀어냈는가에 포커스를 둘 수도 있다. 이 음반에 오리지날 버전으로 담겨 있는 "봄비"와 "꽃잎"이 이후 어떻게 다른 버전들로 변모해갔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이 음반이 LP 앞면은 솔로 가수 독집의 형식으로 3-4분 길이의 대여섯 곡을 담고, 뒷면은 그룹 사운드의 즉흥적인 롱 버전 연주를 중심으로 싣는 신중현 식 음반 구성의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다거나, "먼길"의 주요 리프와 리듬이 "아름다운 강산"의 맹아적 형태를 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20020916

<부연>
1. 신중현은 덩키스 활동과 이 음반으로 당시 매스컴에서 '싸이키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든다는 투의 반감이 걸러지지 않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2. 덩키스는 1969년 11월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만 1년여 동안 펄 시스터즈(1968), 이정화, 김추자의 데뷔작과 김상희의 [어떻게 해/나만이 걸었네], 영화 [푸른 사과] OST 음반(이상 1969) 등의 레코딩에 세션을 맡았고, 1969년 가을 시민회관에서 4일간 성황리에 열린 '싸이키델릭 리사이틀 쇼'에도 세션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덩키스 해산 이후, 신중현은 청파동에 작곡 사무실을 열어 직업적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가져간 한편, 뉴 덩키스를 결성해 짧은 기간 활동한 이후 퀘션스를 결성하면서 밴드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였다.

음반 정보
- 음반번호: DG-1033(복각 CD는 SJHMVD-0001)
- 발매일: 1969년 1월 17일(복각 CD는 2002년 7월 6일)
- 레코딩 장소: 마장동 스튜디오. 녹음 기사: 이청.
- 라인업(옆의 설명은 비닐 음반 뒤 커버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필자가 일부 자구 수정했음. 나이와 활동시간에서 오류가 있어 보임)
이정화(보컬): 1년전 신중현이 리드하는 美八軍 노 아웃 쑈에 입단하여 많은 인기를 차지해 왔다. 현대적인 매력과 특색 있는 음색이 특징으로 흑인들의 Soul 음악과 백인들의 싸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올해 22세 釜山 출신)
이태현(베이스 기타): 굉장한 노력가이며 정열적인 Bass Player. 美八軍 쑈 Shouters에서 일하다가 신중현과 3년 전부터 연주해 왔다. R&B 스타일의 권위자의 한 사람.
오덕기(기타): Rhythm Guitar Player지만 코미디에 빼어놓을 수 없는 특기. 4년 동안의 비교적 짧은 음악 생활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25세)
김민랑(오르간): 음악 학원과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써왔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연주 생활이 비교적 짧으나 감정의 호흡이 잘 맞는다. (경희대학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Organ 연주자. 29세)
김호식(드럼): 21세의 제일 어린 나이지만 Drummer로서의 경력은 4년이나 된다. 꾸준한 노력과 재질로 인기를 모으는 실력파다.
신중현(리드 기타): 美八軍 쑈에서 14년간 연주생활 작편곡 연주를 겸하고 있음.

2007. 5. 14. 16:48
꽃잎 - 이정화
THE PSYCHEDELIC SOUND (BMRL-K2) (싸이키데릭 싸운드)
신중현 작곡집
봄비-꽃잎-마음 -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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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정화

SIDE 1
1. 봄 비
2. 꽃 잎 (7분 45초)
3. 내 일

SIDE 2
1. 마 음 (8분 40초)
2. 먼 길 (8분 24초)


오늘날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해 본 여러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주 로켓트가 박사되는 소리, 초음속 비행기가 날으는 소리, 거대한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 수백 만의 군중이 데모하는 소리 등등 옛날에는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새로운 소리들을 우리는 별달리 새로운 소리라고 느끼지도 않은 채 듣고 있다.

생각컨대 현대인의 귀는 새로운 소리에 귀 익다 못해 이젠 잇달아 쏟아지는 새로운 소리의 홍수에 젖어 이제 마비되다시피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우리의 주변에는 귀의 기능을 상실케할만큼 많은 새로운 소리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넘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큼 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도 음악도 옛날의 그것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른바 현대 음악의 탄생이 요구되고 불협화음의 등장이 불가피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뮤지션들은 지난날의 음악의 법칙을 깨트리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서 뭇소리에 마비된 현대인의 귀에 자극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이상한 소리>였습니다.

과거의 멜로디를 위주로 한 평면적인 음악에만 귀 익어 온 사람들은 멜로디의 조성을 묵살하고 새로운 소리로써 입체적으로 구성한 이 음악을 "이게 무슨 음악이야? 소음이지!" 하곤 음악으로써 받아들이기를 꺼렸습니니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의 개척자들은 그 발명 당초에 있어서는 그렇게나 신기했던 자동차의 소리에 대해서 이젠 그 홍수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조금도 신기하게 느끼지 않는 현대인의 재빠른 <귀의 적응성>으로 미루어 멀지 않아 그들의 음악을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 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으로써 느낄 때가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도 그것을 믿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미력하나마 <새로운 음악>의 창조에 힘쓰고 있는 터입니다. 이 앨범에서 저로선 처음으로 시도한 싸이키 데릭 사운드로 종래의 대중 가요 기준의 잣대로 가름질한다면 좀 <이상한 가요>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귀에 익기만 하면 여러분께선 조금도 이상한 음악 아니라고 느끼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싸이키데릭 사운드는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 그 특색입니다.
그런만큼 뮤디션을 연주할 때 듣는 이의 청각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 없고 시각에 대해서도 자극을 가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레코드에서는 그 무드를 전달해 줄 모든 사운드를 총동원하여 듣는 이의 상상력의 문을 열어 주어 듣는 이 각자의 마음속에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겠금 무드와 대사를 제공하는데 힘씁니다.

이것이 미국의 싸이키데릭 그룹 의 말입니다.
저도 이런 효과를 노려 이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여러분, 여러분께선 이 판을 통해서 마음 속에 여러분 나름의 그림을 그려봐 주십시요.
그 그림이 제가 그리는 그림과 일치된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1969 년 새봄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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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이정화
THE PSYCHEDELIC SOUND (BMRL-K2) (싸이키데릭 싸운드)
신중현 작곡집
봄비-꽃잎-마음 -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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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이정화

SIDE 1
1. 봄 비
2. 꽃 잎 (7분 45초)
3. 내 일

SIDE 2
1. 마 음 (8분 40초)
2. 먼 길 (8분 24초)


오늘날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해 본 여러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주 로켓트가 박사되는 소리, 초음속 비행기가 날으는 소리, 거대한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 수백 만의 군중이 데모하는 소리 등등 옛날에는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새로운 소리들을 우리는 별달리 새로운 소리라고 느끼지도 않은 채 듣고 있다.

생각컨대 현대인의 귀는 새로운 소리에 귀 익다 못해 이젠 잇달아 쏟아지는 새로운 소리의 홍수에 젖어 이제 마비되다시피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우리의 주변에는 귀의 기능을 상실케할만큼 많은 새로운 소리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넘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큼 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도 음악도 옛날의 그것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른바 현대 음악의 탄생이 요구되고 불협화음의 등장이 불가피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뮤지션들은 지난날의 음악의 법칙을 깨트리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서 뭇소리에 마비된 현대인의 귀에 자극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이상한 소리>였습니다.

과거의 멜로디를 위주로 한 평면적인 음악에만 귀 익어 온 사람들은 멜로디의 조성을 묵살하고 새로운 소리로써 입체적으로 구성한 이 음악을 "이게 무슨 음악이야? 소음이지!" 하곤 음악으로써 받아들이기를 꺼렸습니니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의 개척자들은 그 발명 당초에 있어서는 그렇게나 신기했던 자동차의 소리에 대해서 이젠 그 홍수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조금도 신기하게 느끼지 않는 현대인의 재빠른 <귀의 적응성>으로 미루어 멀지 않아 그들의 음악을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 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으로써 느낄 때가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도 그것을 믿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미력하나마 <새로운 음악>의 창조에 힘쓰고 있는 터입니다. 이 앨범에서 저로선 처음으로 시도한 싸이키 데릭 사운드로 종래의 대중 가요 기준의 잣대로 가름질한다면 좀 <이상한 가요>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귀에 익기만 하면 여러분께선 조금도 이상한 음악 아니라고 느끼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싸이키데릭 사운드는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 그 특색입니다.
그런만큼 뮤디션을 연주할 때 듣는 이의 청각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 없고 시각에 대해서도 자극을 가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레코드에서는 그 무드를 전달해 줄 모든 사운드를 총동원하여 듣는 이의 상상력의 문을 열어 주어 듣는 이 각자의 마음속에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겠금 무드와 대사를 제공하는데 힘씁니다.

이것이 미국의 싸이키데릭 그룹 <The Doors>의 말입니다.
저도 이런 효과를 노려 이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여러분, 여러분께선 이 판을 통해서 마음 속에 여러분 나름의 그림을 그려봐 주십시요.
그 그림이 제가 그리는 그림과 일치된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1969 년 새봄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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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이정화

신중현과 덩키스 - 이정화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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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싫어
2. 봄비
3. 꽃잎
4. 먼길
5. 내일
6. 마음

꽃잎 - 이정화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기념비적 발걸음

1969 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펼쳐진 '트로트의 시대, 이미자의 독주 체제'는 1969년을 기점으로 흔들렸다. 펄 시스터즈의 "님아"와 "커피 한잔"(모두 레코딩은 1968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소울 가요들이 히트하며 트로트의 아성을 뒤흔들었고, 싸이키델릭으로 분류된 그룹 사운드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4일간 열린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4만 여명의 청중을 동원할 만큼 저변을 확대하고 있었다. 1969년, '소울 & 싸이키'로 명명된 물결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 무렵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가 (통기타/포크와 함께 표출되는) 청년문화를 예고하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메이저리그 스타로 등극했다면, 이 [싫어 / 봄비] 음반은 바로 그 메이저리거들을 키워낸 음악적 산파였던 신중현, 그가 지휘한 밴드들, 그리고 이제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될 마이너리그 스타 가수들의 등장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신중현이 이 시기부터 한편으론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주로 여)가수들을 조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라인업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싫어 / 봄비] 앨범은 신인 여가수 이정화의 데뷔 앨범으로도, 신중현이 이끈 5인조 밴드 덩키스(Donkeys)의 공식 데뷔작으로도 불린다. '누구의 몇 집' 식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의 모호한 성격을 대변한다. 기획에 있어서 이 음반은 신중현이 한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만든 대중적인 솔로 가수 앨범(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김정미 등의 음반)과, 신중현 자신의 그룹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밴드 앨범(애드 훠, 퀘션스, 엽전들 등의 음반)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이 '일반 무대'와 미8군 쇼 무대를 계속 오가며 활동했던 점, 록 밴드를 지향하면서도 캄보(전기 기타가 주도하는 소편성 연주 밴드)와 패키지 쇼(캄보와 보컬리스트와 무희로 구성된 소규모 쇼)의 그늘에 머물렀던 점이 드러난다. 이정화가 무대용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담은 커버는 이 음반이 패키지 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펄 시스터즈의 데뷔작의 '화사한 커버'와 비교해 보라. 펄 시스터즈의 음반은 피크닉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이 상큼하게 연출되어 있다).

음반 커버의 안쪽에 담겨 있는 덩키스와 이정화의 모습

애드 훠(Add 4), 블루즈 테트(Blooz Tet)의 해산 이후 신중현(리드 기타)은 1968년 후반기에 이태현(베이스), 김민랑(키보드), 오덕기(리듬 기타), 김호식(드럼)을 영입해 5인조 밴드 덩키스를 결성하고 미8군 무대에서 '노 아웃 쇼(No Out Show)'라는 패키지 쇼 단체를 이끌었다. 이 패키지 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인물이 이 음반의 주인공 이정화였다. '노 아웃 쇼'가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게 되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일반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1968년 말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둘 다 신중현의 창작곡에 덩키스의 연주로 녹음되었지만, 펄 시스터즈의 음반이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가수에 초점을 맞춘 반면(덩키스의 연주는 '반주'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밴드 솔로 가수 음반과 밴드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싫어 / 봄비]는 신중현이 당시 자신의 그룹 사운드(덩키스)를 통해 어떤 음악을 지향했는지를 좀더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정화와 덩키스가 이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싸이키델릭 록이었다. 물론 소울의 색채가 적지는 않은데, 첫 곡 "싫어"와 두 번째 곡 "봄비"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정화의 보컬은 당시 일반적인 소울 (여)가수들의 열창 스타일과 달리, '밋밋한' 느낌마저 준다(신중현이 당시 조련한 펄 시스터즈, 김상희, 김추자의 다소 허스키하고 당돌한 보컬과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이듬해 퀘션스(Questions)의 음반에 박인수의 보컬 버전으로 실려 히트한 "봄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수의 버전이 감정을 모두 투여하는 진한 소울 음색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이정화의 버전은 낭만과 폭발 대신 각 연주 파트가 어느 한쪽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된다. 이정화의 보컬은 감탄을 자아낼 만한 기교 없이 오히려 다소 불안정한 음정으로 덩키스의 연주에 묻혀 '흐른다.' 그래서 이정화의 "봄비"는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절정으로 인도한다. 이 곡을 싸이키델릭하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일 공산이 크다. 단지 키보드와 현악 세션 때문이 아니라.

이어지는 "꽃잎"은 좀더 완연하게 싸이키델릭적이다. 퍼즈 기타와 오르간이 장엄하게 나오다 잔잔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로 바뀌는 도입부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연주가 강조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일"에도 재현된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 곡은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출렁이며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잊게 만든다. 마지막 곡이자 LP의 B면 전체를 차지하는 "마음"은 신중현 식 싸이키델릭의 요체를 담고 있다. 퍼즈 기타가 리드하는 주제 리프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사이 총 16분 35초간 본격적인 '약물 여행'으로 이끈다. 이정화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을 수미상관으로, 중간에 즉흥 솔로 연주가 길게 전개되는 구조인데, 2분 47초부터 기타 솔로, 오르간 솔로, 베이스 기타 솔로, 드럼 솔로가 차례로 9분 가까이 전개된다. 특히 와와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7분 여간 펼쳐지는 신중현의 기타 애드립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즉흥 연주이다. "마음"은 음반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70년을 전후해 꽃피운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한 정수(精髓)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 커버의 축소판으로 나온 복각 CD

[싫어 / 봄비]는 당시 소울과 싸이키델릭의 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음반이다. 신중현이 만든 솔로 가수의 음반들이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그를 히트곡 제조기의 반열에 올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그룹 사운드의 음반은 앞으로도(엽전들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징조를 보여주었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될 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음반이 CD로 복각되어 재발매된 것은 한국 록의 잊혀진 역사 그림 중 퍼즐 하나를 끼워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 뒤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복각이다. 복각 CD의 커버나 케이스도 비닐 음반(LP)의 커버와 케이스의 축소판이어서 음반의 아우라도 최대한 살렸다. 그렇다고 속지까지 조잡하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은 필요하고, 비닐 원판에 비해 복각된 CD에 담긴 음원의 주행 속도가 미세하게 빠르다는 점은 옥의 티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사항이지만, 그것이 이 음반의 복각이 주는 의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싸이키델릭 록 음반이란 점에 주목할 수도 있고, 신중현이 당시 밴드의 지향점을 어떻게 레코딩으로 풀어냈는가에 포커스를 둘 수도 있다. 이 음반에 오리지날 버전으로 담겨 있는 "봄비"와 "꽃잎"이 이후 어떻게 다른 버전들로 변모해갔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이 음반이 LP 앞면은 솔로 가수 독집의 형식으로 3-4분 길이의 대여섯 곡을 담고, 뒷면은 그룹 사운드의 즉흥적인 롱 버전 연주를 중심으로 싣는 신중현 식 음반 구성의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다거나, "먼길"의 주요 리프와 리듬이 "아름다운 강산"의 맹아적 형태를 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20020916

<부연>
1. 신중현은 덩키스 활동과 이 음반으로 당시 매스컴에서 '싸이키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든다는 투의 반감이 걸러지지 않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2. 덩키스는 1969년 11월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만 1년여 동안 펄 시스터즈(1968), 이정화, 김추자의 데뷔작과 김상희의 [어떻게 해/나만이 걸었네], 영화 [푸른 사과] OST 음반(이상 1969) 등의 레코딩에 세션을 맡았고, 1969년 가을 시민회관에서 4일간 성황리에 열린 '싸이키델릭 리사이틀 쇼'에도 세션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덩키스 해산 이후, 신중현은 청파동에 작곡 사무실을 열어 직업적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가져간 한편, 뉴 덩키스를 결성해 짧은 기간 활동한 이후 퀘션스를 결성하면서 밴드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였다.

음반 정보
- 음반번호: DG-1033(복각 CD는 SJHMVD-0001)
- 발매일: 1969년 1월 17일(복각 CD는 2002년 7월 6일)
- 레코딩 장소: 마장동 스튜디오. 녹음 기사: 이청.
- 라인업(옆의 설명은 비닐 음반 뒤 커버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필자가 일부 자구 수정했음. 나이와 활동시간에서 오류가 있어 보임)
이정화(보컬): 1년전 신중현이 리드하는 美八軍 노 아웃 쑈에 입단하여 많은 인기를 차지해 왔다. 현대적인 매력과 특색 있는 음색이 특징으로 흑인들의 Soul 음악과 백인들의 싸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올해 22세 釜山 출신)
이태현(베이스 기타): 굉장한 노력가이며 정열적인 Bass Player. 美八軍 쑈 Shouters에서 일하다가 신중현과 3년 전부터 연주해 왔다. R&B 스타일의 권위자의 한 사람.
오덕기(기타): Rhythm Guitar Player지만 코미디에 빼어놓을 수 없는 특기. 4년 동안의 비교적 짧은 음악 생활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25세)
김민랑(오르간): 음악 학원과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써왔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연주 생활이 비교적 짧으나 감정의 호흡이 잘 맞는다. (경희대학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Organ 연주자. 29세)
김호식(드럼): 21세의 제일 어린 나이지만 Drummer로서의 경력은 4년이나 된다. 꾸준한 노력과 재질로 인기를 모으는 실력파다.
신중현(리드 기타): 美八軍 쑈에서 14년간 연주생활 작편곡 연주를 겸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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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정화

신중현과 덩키스 - 이정화 (1969)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봄비 - 이정화

1. 싫어
2. 봄비
3. 꽃잎
4. 먼길
5. 내일
6. 마음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기념비적 발걸음

1969 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펼쳐진 '트로트의 시대, 이미자의 독주 체제'는 1969년을 기점으로 흔들렸다. 펄 시스터즈의 "님아"와 "커피 한잔"(모두 레코딩은 1968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소울 가요들이 히트하며 트로트의 아성을 뒤흔들었고, 싸이키델릭으로 분류된 그룹 사운드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4일간 열린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4만 여명의 청중을 동원할 만큼 저변을 확대하고 있었다. 1969년, '소울 & 싸이키'로 명명된 물결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 무렵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가 (통기타/포크와 함께 표출되는) 청년문화를 예고하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메이저리그 스타로 등극했다면, 이 [싫어 / 봄비] 음반은 바로 그 메이저리거들을 키워낸 음악적 산파였던 신중현, 그가 지휘한 밴드들, 그리고 이제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될 마이너리그 스타 가수들의 등장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신중현이 이 시기부터 한편으론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주로 여)가수들을 조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라인업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싫어 / 봄비] 앨범은 신인 여가수 이정화의 데뷔 앨범으로도, 신중현이 이끈 5인조 밴드 덩키스(Donkeys)의 공식 데뷔작으로도 불린다. '누구의 몇 집' 식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의 모호한 성격을 대변한다. 기획에 있어서 이 음반은 신중현이 한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만든 대중적인 솔로 가수 앨범(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김정미 등의 음반)과, 신중현 자신의 그룹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밴드 앨범(애드 훠, 퀘션스, 엽전들 등의 음반)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이 '일반 무대'와 미8군 쇼 무대를 계속 오가며 활동했던 점, 록 밴드를 지향하면서도 캄보(전기 기타가 주도하는 소편성 연주 밴드)와 패키지 쇼(캄보와 보컬리스트와 무희로 구성된 소규모 쇼)의 그늘에 머물렀던 점이 드러난다. 이정화가 무대용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담은 커버는 이 음반이 패키지 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펄 시스터즈의 데뷔작의 '화사한 커버'와 비교해 보라. 펄 시스터즈의 음반은 피크닉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이 상큼하게 연출되어 있다).

음반 커버의 안쪽에 담겨 있는 덩키스와 이정화의 모습

애드 훠(Add 4), 블루즈 테트(Blooz Tet)의 해산 이후 신중현(리드 기타)은 1968년 후반기에 이태현(베이스), 김민랑(키보드), 오덕기(리듬 기타), 김호식(드럼)을 영입해 5인조 밴드 덩키스를 결성하고 미8군 무대에서 '노 아웃 쇼(No Out Show)'라는 패키지 쇼 단체를 이끌었다. 이 패키지 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인물이 이 음반의 주인공 이정화였다. '노 아웃 쇼'가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게 되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일반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1968년 말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둘 다 신중현의 창작곡에 덩키스의 연주로 녹음되었지만, 펄 시스터즈의 음반이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가수에 초점을 맞춘 반면(덩키스의 연주는 '반주'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밴드 솔로 가수 음반과 밴드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싫어 / 봄비]는 신중현이 당시 자신의 그룹 사운드(덩키스)를 통해 어떤 음악을 지향했는지를 좀더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정화와 덩키스가 이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싸이키델릭 록이었다. 물론 소울의 색채가 적지는 않은데, 첫 곡 "싫어"와 두 번째 곡 "봄비"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정화의 보컬은 당시 일반적인 소울 (여)가수들의 열창 스타일과 달리, '밋밋한' 느낌마저 준다(신중현이 당시 조련한 펄 시스터즈, 김상희, 김추자의 다소 허스키하고 당돌한 보컬과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이듬해 퀘션스(Questions)의 음반에 박인수의 보컬 버전으로 실려 히트한 "봄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수의 버전이 감정을 모두 투여하는 진한 소울 음색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이정화의 버전은 낭만과 폭발 대신 각 연주 파트가 어느 한쪽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된다. 이정화의 보컬은 감탄을 자아낼 만한 기교 없이 오히려 다소 불안정한 음정으로 덩키스의 연주에 묻혀 '흐른다.' 그래서 이정화의 "봄비"는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절정으로 인도한다. 이 곡을 싸이키델릭하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일 공산이 크다. 단지 키보드와 현악 세션 때문이 아니라.

이어지는 "꽃잎"은 좀더 완연하게 싸이키델릭적이다. 퍼즈 기타와 오르간이 장엄하게 나오다 잔잔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로 바뀌는 도입부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연주가 강조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일"에도 재현된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 곡은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출렁이며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잊게 만든다. 마지막 곡이자 LP의 B면 전체를 차지하는 "마음"은 신중현 식 싸이키델릭의 요체를 담고 있다. 퍼즈 기타가 리드하는 주제 리프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사이 총 16분 35초간 본격적인 '약물 여행'으로 이끈다. 이정화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을 수미상관으로, 중간에 즉흥 솔로 연주가 길게 전개되는 구조인데, 2분 47초부터 기타 솔로, 오르간 솔로, 베이스 기타 솔로, 드럼 솔로가 차례로 9분 가까이 전개된다. 특히 와와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7분 여간 펼쳐지는 신중현의 기타 애드립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즉흥 연주이다. "마음"은 음반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70년을 전후해 꽃피운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한 정수(精髓)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 커버의 축소판으로 나온 복각 CD

[싫어 / 봄비]는 당시 소울과 싸이키델릭의 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음반이다. 신중현이 만든 솔로 가수의 음반들이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그를 히트곡 제조기의 반열에 올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그룹 사운드의 음반은 앞으로도(엽전들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징조를 보여주었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될 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음반이 CD로 복각되어 재발매된 것은 한국 록의 잊혀진 역사 그림 중 퍼즐 하나를 끼워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 뒤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복각이다. 복각 CD의 커버나 케이스도 비닐 음반(LP)의 커버와 케이스의 축소판이어서 음반의 아우라도 최대한 살렸다. 그렇다고 속지까지 조잡하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은 필요하고, 비닐 원판에 비해 복각된 CD에 담긴 음원의 주행 속도가 미세하게 빠르다는 점은 옥의 티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사항이지만, 그것이 이 음반의 복각이 주는 의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싸이키델릭 록 음반이란 점에 주목할 수도 있고, 신중현이 당시 밴드의 지향점을 어떻게 레코딩으로 풀어냈는가에 포커스를 둘 수도 있다. 이 음반에 오리지날 버전으로 담겨 있는 "봄비"와 "꽃잎"이 이후 어떻게 다른 버전들로 변모해갔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이 음반이 LP 앞면은 솔로 가수 독집의 형식으로 3-4분 길이의 대여섯 곡을 담고, 뒷면은 그룹 사운드의 즉흥적인 롱 버전 연주를 중심으로 싣는 신중현 식 음반 구성의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다거나, "먼길"의 주요 리프와 리듬이 "아름다운 강산"의 맹아적 형태를 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20020916

<부연>
1. 신중현은 덩키스 활동과 이 음반으로 당시 매스컴에서 '싸이키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든다는 투의 반감이 걸러지지 않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2. 덩키스는 1969년 11월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만 1년여 동안 펄 시스터즈(1968), 이정화, 김추자의 데뷔작과 김상희의 [어떻게 해/나만이 걸었네], 영화 [푸른 사과] OST 음반(이상 1969) 등의 레코딩에 세션을 맡았고, 1969년 가을 시민회관에서 4일간 성황리에 열린 '싸이키델릭 리사이틀 쇼'에도 세션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덩키스 해산 이후, 신중현은 청파동에 작곡 사무실을 열어 직업적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가져간 한편, 뉴 덩키스를 결성해 짧은 기간 활동한 이후 퀘션스를 결성하면서 밴드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였다.

음반 정보
- 음반번호: DG-1033(복각 CD는 SJHMVD-0001)
- 발매일: 1969년 1월 17일(복각 CD는 2002년 7월 6일)
- 레코딩 장소: 마장동 스튜디오. 녹음 기사: 이청.
- 라인업(옆의 설명은 비닐 음반 뒤 커버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필자가 일부 자구 수정했음. 나이와 활동시간에서 오류가 있어 보임)
이정화(보컬): 1년전 신중현이 리드하는 美八軍 노 아웃 쑈에 입단하여 많은 인기를 차지해 왔다. 현대적인 매력과 특색 있는 음색이 특징으로 흑인들의 Soul 음악과 백인들의 싸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올해 22세 釜山 출신)
이태현(베이스 기타): 굉장한 노력가이며 정열적인 Bass Player. 美八軍 쑈 Shouters에서 일하다가 신중현과 3년 전부터 연주해 왔다. R&B 스타일의 권위자의 한 사람.
오덕기(기타): Rhythm Guitar Player지만 코미디에 빼어놓을 수 없는 특기. 4년 동안의 비교적 짧은 음악 생활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25세)
김민랑(오르간): 음악 학원과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써왔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연주 생활이 비교적 짧으나 감정의 호흡이 잘 맞는다. (경희대학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Organ 연주자. 29세)
김호식(드럼): 21세의 제일 어린 나이지만 Drummer로서의 경력은 4년이나 된다. 꾸준한 노력과 재질로 인기를 모으는 실력파다.
신중현(리드 기타): 美八軍 쑈에서 14년간 연주생활 작편곡 연주를 겸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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