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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6. 19:39
봄비 - 인순이
떠나야할 그사람 (1981) - 인순이

봄비 - 인순이

01. 떠나야할 그사람
02. 다시 말해요
03. 석양
04. 봄비
05. 추억
06. 누가
07. 오솔길을 따라서
08. 가야지
09. 달님아
10. 빗방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순이: 아직도 오해되고 있는 소울 디바


인순이, 떠나야할 그 사람

1970년대 말 댄스 그룹 희자매의 리드 보컬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인순이는 1980년대가 되면서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던졌다 - 당시 인순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출신으로 솔로 가수가 된 비욘세(Beyonce)를 연상하면 된다. 솔로 가수로서 그의 출발은 매우 낙관적인 것이었다. 그는 실질적 데뷔곡으로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선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최고의 절창으로 기억된다. 펄 시스터스에서 조영남에 이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곡에 손을 대 보았지만 인순이의 버전을 능가할 만한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곡에서 그가 과시한 힘과 정열은 한국 음악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생산적일 수도 있었던 이 두 사람의 협력은 단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곡 이후 인순이의 음악 여정은 지극히 혼란스럽게 이어져 갔다. "밤이면 밤마다"로 반짝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1980년대 내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뽕짝에서부터 건전가요("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기억하는가?)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다 해봤지만 그 성과는 전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열린 음악회를 통해 그야말로 기적같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음악적 인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가창력 가수'라는 유감스러운 꼬리표가 그 증거다. 인순이는 한국에서 드물게 머리와 가슴과 목소리를 겸비한 가수다. 이런 그에게 단지 '목청으로 승부하는 가수'라는 일면적 평가는 절대로 정당하지 않다.
[출 처 : we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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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5. 15:43
떠나야할 그사람 (1981) - 인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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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할 그 사람 - 인순이

01. 떠나야할 그사람
02. 다시 말해요
03. 석양
04. 봄비
05. 추억
06. 누가
07. 오솔길을 따라서
08. 가야지
09. 달님아
10.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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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아직도 오해되고 있는 소울 디바


인순이, 떠나야할 그 사람

1970년대 말 댄스 그룹 희자매의 리드 보컬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인순이는 1980년대가 되면서 솔로 가수로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던졌다 - 당시 인순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출신으로 솔로 가수가 된 비욘세(Beyonce)를 연상하면 된다. 솔로 가수로서 그의 출발은 매우 낙관적인 것이었다. 그는 실질적 데뷔곡으로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선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최고의 절창으로 기억된다. 펄 시스터스에서 조영남에 이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곡에 손을 대 보았지만 인순이의 버전을 능가할 만한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곡에서 그가 과시한 힘과 정열은 한국 음악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생산적일 수도 있었던 이 두 사람의 협력은 단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곡 이후 인순이의 음악 여정은 지극히 혼란스럽게 이어져 갔다. "밤이면 밤마다"로 반짝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1980년대 내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뽕짝에서부터 건전가요("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기억하는가?)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다 해봤지만 그 성과는 전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열린 음악회를 통해 그야말로 기적같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음악적 인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가창력 가수'라는 유감스러운 꼬리표가 그 증거다. 인순이는 한국에서 드물게 머리와 가슴과 목소리를 겸비한 가수다. 이런 그에게 단지 '목청으로 승부하는 가수'라는 일면적 평가는 절대로 정당하지 않다.
[출 처 : weiv ]
2007. 4. 25. 15:26
떠나야할 그 사람 - 김추자
신중현 작품집 - 인.아.가.다.다.비.다 (Live)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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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할 그 사람 - 김추자

1. 님은 먼곳에
2.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3. 떠나야할 그사람    
4. Funk Broadway(훵크 브로드웨이)    
5. In-A-Kadda-Da Vida(인아가다다비다)



1970년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실황을 담은 이 앨범은 한마디로 희귀음반 중의 희귀음반이다. 오리지널 LP의 경우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몇 안될만큼 귀한 것이었고 따라서 가격도 천문학적이었다. 이런 전설의 음반이 CD로 발매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퀘스천스 기존 멤버들 이외에 박인수, 송만수, 김추자 등이 보컬리스트로 참여하고 있어 듣는 재미를 더해준다.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던 당대의 ‘섹스심벌’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는 창법에 무척이나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다. 박정희 정권이라는 살벌한 동토의 땅에서 이런 타입으로 노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용기와 ‘끼’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곡을 노래할 당시의 그녀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한국이 배출해낸 또하나의 걸출한 보컬리스트 박인수. Funky Broadway라는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그의 보컬은 감탄할만하다. 소울풀한 창법에 기반한 그의 격정적인 노래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광기와 재기에 필적할만하다. 와와페달에 의한 신중현의 날렵한 기타 플레이도 당시의 기타리스트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감각적인 연주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트랙은 본격 사이키델릭을 시도하고 있는 대곡 In-A-Gadda-Da-Vida이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아메리칸 사이키델릭을 빛낸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명곡을 리바이벌한 이곡은 15분이나 되는 길이로 연주되고 있는데, 이것은 17분이 넘는 오리지널과 불과 2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러닝타임이다. 이 당시에 이런 대곡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원곡을 응용하는 리메이크적 연주라기 보다는 원곡에 충실한, 아니 원곡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 때문인지 곡 자체는 ‘카피’에 가까울 만큼 오리지널에 충실한 접근을 보인다. 여기에서도 신중현의 와와페달 기타 솔로가 날카롭고 강렬하게 빛을 발한다. 오르간은 아이언 버터플라이 스타일의 맛내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여겨질만큼 원론적이다. 어떠한 장식적 필 인도 배제하고 본능적 몽환적인 기분 속으로 탐닉해가는 김대환의 나르시시즘적 드럼도 강도 높은 충격을 준다.

퀘스천스만의 창작곡이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유감으로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러닝타임의 한계나 그외 상업적인 그 어떤 것에도 게의치 않고 독자적으로 음악적인 자기주장을 하려 한 그 선명성, 그 대범한 실험적 시도는 이 앨범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


글 / 조성진 changgo.com

2007. 4. 24. 14:00
님은 먼곳에 - 김추자
신중현 작품집 - 인.아.가.다.다.비.다 (Live)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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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 - 김추자

1. 님은 먼곳에     
2.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3. 떠나야할 그사람    
4. Funk Broadway(훵크 브로드웨이)    
5. In-A-Kadda-Da Vida(인아가다다비다)


1970년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실황을 담은 이 앨범은 한마디로 희귀음반 중의 희귀음반이다. 오리지널 LP의 경우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몇 안될만큼 귀한 것이었고 따라서 가격도 천문학적이었다. 이런 전설의 음반이 CD로 발매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퀘스천스 기존 멤버들 이외에 박인수, 송만수, 김추자 등이 보컬리스트로 참여하고 있어 듣는 재미를 더해준다.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던 당대의 ‘섹스심벌’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는 창법에 무척이나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다. 박정희 정권이라는 살벌한 동토의 땅에서 이런 타입으로 노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용기와 ‘끼’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곡을 노래할 당시의 그녀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한국이 배출해낸 또하나의 걸출한 보컬리스트 박인수. Funky Broadway라는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그의 보컬은 감탄할만하다. 소울풀한 창법에 기반한 그의 격정적인 노래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광기와 재기에 필적할만하다. 와와페달에 의한 신중현의 날렵한 기타 플레이도 당시의 기타리스트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감각적인 연주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트랙은 본격 사이키델릭을 시도하고 있는 대곡 In-A-Gadda-Da-Vida이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까지 아메리칸 사이키델릭을 빛낸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명곡을 리바이벌한 이곡은 15분이나 되는 길이로 연주되고 있는데, 이것은 17분이 넘는 오리지널과 불과 2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러닝타임이다. 이 당시에 이런 대곡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원곡을 응용하는 리메이크적 연주라기 보다는 원곡에 충실한, 아니 원곡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 때문인지 곡 자체는 ‘카피’에 가까울 만큼 오리지널에 충실한 접근을 보인다. 여기에서도 신중현의 와와페달 기타 솔로가 날카롭고 강렬하게 빛을 발한다. 오르간은 아이언 버터플라이 스타일의 맛내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여겨질만큼 원론적이다. 어떠한 장식적 필 인도 배제하고 본능적 몽환적인 기분 속으로 탐닉해가는 김대환의 나르시시즘적 드럼도 강도 높은 충격을 준다.

퀘스천스만의 창작곡이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유감으로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러닝타임의 한계나 그외 상업적인 그 어떤 것에도 게의치 않고 독자적으로 음악적인 자기주장을 하려 한 그 선명성, 그 대범한 실험적 시도는 이 앨범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

글 / 조성진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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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4. 13:33
어떻게 해 - 김상희

김상희 리싸이틀 쑈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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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배삼룡,  신중현과 퀘션스, 여대영악단이 세션

1.울산 큰애기
2.대머리총각
3.홍콩의 에레지
4.목포의 눈물
5.써니
6.In My Room

1.커피한잔(고지미자매)
2.사랑의 상처(김상희)
3.어떻게 해(김상희)
4.굳바이(김상희)


김상희는 한국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며 70년 1월 최초의 리사이틀을
개최할만큼 최정상에 올랐다. 이때의 공연실황을 담은 <김상희 리싸이틀쇼-유니버샬,KLH7,70년3월> 음반은 그녀의
최고명반으로 손꼽히는 고가의 희귀음반. 배삼룡이 사회를 맡고 신중현과 퀘션스, 여대영악단이 세션을 맡았다.

이 실황음반의 압권은 2면에 수록된 사이키델릭 향기가
진동하는 7분50초짜리 명곡 <어떻게 해> 퀘션스의 신들린 애드립 연주는 듣는 이의 탄성을 불러낼 만큼 현란함의
극치를 들려준다. 또한 록버전으로 들어보는 색다른 맛깔의 <울산큰애기>도 놓칠수 없는 들을거리이다.

영역을 넓힌 김상희는 젊은이들이 즐겨찾던 무교동의 코파 카바나 클럽무대에 첫 등장을 하며 조선호텔 나이트클럽으로까지 진출, 젊은 남성층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어떻게 해>의 가사내용을 <누워서 해>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개사를 해 부르는 짓궂은 남성들 때문에 개사된 노래가 유행이 되자 처음으로 방송금지를 당하는 아픔을 겪으며 좌절했다.


2007. 4. 19. 19:55
꽃잎 - 이정화

신중현과 덩키스 - 이정화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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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싫어
2. 봄비
3. 꽃잎
4. 먼길
5. 내일
6. 마음

꽃잎 - 이정화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기념비적 발걸음

1969 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펼쳐진 '트로트의 시대, 이미자의 독주 체제'는 1969년을 기점으로 흔들렸다. 펄 시스터즈의 "님아"와 "커피 한잔"(모두 레코딩은 1968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소울 가요들이 히트하며 트로트의 아성을 뒤흔들었고, 싸이키델릭으로 분류된 그룹 사운드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4일간 열린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4만 여명의 청중을 동원할 만큼 저변을 확대하고 있었다. 1969년, '소울 & 싸이키'로 명명된 물결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 무렵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가 (통기타/포크와 함께 표출되는) 청년문화를 예고하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메이저리그 스타로 등극했다면, 이 [싫어 / 봄비] 음반은 바로 그 메이저리거들을 키워낸 음악적 산파였던 신중현, 그가 지휘한 밴드들, 그리고 이제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될 마이너리그 스타 가수들의 등장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신중현이 이 시기부터 한편으론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주로 여)가수들을 조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라인업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싫어 / 봄비] 앨범은 신인 여가수 이정화의 데뷔 앨범으로도, 신중현이 이끈 5인조 밴드 덩키스(Donkeys)의 공식 데뷔작으로도 불린다. '누구의 몇 집' 식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의 모호한 성격을 대변한다. 기획에 있어서 이 음반은 신중현이 한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만든 대중적인 솔로 가수 앨범(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김정미 등의 음반)과, 신중현 자신의 그룹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밴드 앨범(애드 훠, 퀘션스, 엽전들 등의 음반)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이 '일반 무대'와 미8군 쇼 무대를 계속 오가며 활동했던 점, 록 밴드를 지향하면서도 캄보(전기 기타가 주도하는 소편성 연주 밴드)와 패키지 쇼(캄보와 보컬리스트와 무희로 구성된 소규모 쇼)의 그늘에 머물렀던 점이 드러난다. 이정화가 무대용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담은 커버는 이 음반이 패키지 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펄 시스터즈의 데뷔작의 '화사한 커버'와 비교해 보라. 펄 시스터즈의 음반은 피크닉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이 상큼하게 연출되어 있다).

음반 커버의 안쪽에 담겨 있는 덩키스와 이정화의 모습

애드 훠(Add 4), 블루즈 테트(Blooz Tet)의 해산 이후 신중현(리드 기타)은 1968년 후반기에 이태현(베이스), 김민랑(키보드), 오덕기(리듬 기타), 김호식(드럼)을 영입해 5인조 밴드 덩키스를 결성하고 미8군 무대에서 '노 아웃 쇼(No Out Show)'라는 패키지 쇼 단체를 이끌었다. 이 패키지 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인물이 이 음반의 주인공 이정화였다. '노 아웃 쇼'가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게 되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일반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1968년 말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둘 다 신중현의 창작곡에 덩키스의 연주로 녹음되었지만, 펄 시스터즈의 음반이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가수에 초점을 맞춘 반면(덩키스의 연주는 '반주'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밴드 솔로 가수 음반과 밴드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싫어 / 봄비]는 신중현이 당시 자신의 그룹 사운드(덩키스)를 통해 어떤 음악을 지향했는지를 좀더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정화와 덩키스가 이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싸이키델릭 록이었다. 물론 소울의 색채가 적지는 않은데, 첫 곡 "싫어"와 두 번째 곡 "봄비"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정화의 보컬은 당시 일반적인 소울 (여)가수들의 열창 스타일과 달리, '밋밋한' 느낌마저 준다(신중현이 당시 조련한 펄 시스터즈, 김상희, 김추자의 다소 허스키하고 당돌한 보컬과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이듬해 퀘션스(Questions)의 음반에 박인수의 보컬 버전으로 실려 히트한 "봄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수의 버전이 감정을 모두 투여하는 진한 소울 음색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이정화의 버전은 낭만과 폭발 대신 각 연주 파트가 어느 한쪽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된다. 이정화의 보컬은 감탄을 자아낼 만한 기교 없이 오히려 다소 불안정한 음정으로 덩키스의 연주에 묻혀 '흐른다.' 그래서 이정화의 "봄비"는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절정으로 인도한다. 이 곡을 싸이키델릭하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일 공산이 크다. 단지 키보드와 현악 세션 때문이 아니라.

이어지는 "꽃잎"은 좀더 완연하게 싸이키델릭적이다. 퍼즈 기타와 오르간이 장엄하게 나오다 잔잔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로 바뀌는 도입부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연주가 강조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일"에도 재현된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 곡은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출렁이며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잊게 만든다. 마지막 곡이자 LP의 B면 전체를 차지하는 "마음"은 신중현 식 싸이키델릭의 요체를 담고 있다. 퍼즈 기타가 리드하는 주제 리프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사이 총 16분 35초간 본격적인 '약물 여행'으로 이끈다. 이정화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을 수미상관으로, 중간에 즉흥 솔로 연주가 길게 전개되는 구조인데, 2분 47초부터 기타 솔로, 오르간 솔로, 베이스 기타 솔로, 드럼 솔로가 차례로 9분 가까이 전개된다. 특히 와와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7분 여간 펼쳐지는 신중현의 기타 애드립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즉흥 연주이다. "마음"은 음반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70년을 전후해 꽃피운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한 정수(精髓)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 커버의 축소판으로 나온 복각 CD

[싫어 / 봄비]는 당시 소울과 싸이키델릭의 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음반이다. 신중현이 만든 솔로 가수의 음반들이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그를 히트곡 제조기의 반열에 올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그룹 사운드의 음반은 앞으로도(엽전들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징조를 보여주었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될 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음반이 CD로 복각되어 재발매된 것은 한국 록의 잊혀진 역사 그림 중 퍼즐 하나를 끼워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 뒤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복각이다. 복각 CD의 커버나 케이스도 비닐 음반(LP)의 커버와 케이스의 축소판이어서 음반의 아우라도 최대한 살렸다. 그렇다고 속지까지 조잡하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은 필요하고, 비닐 원판에 비해 복각된 CD에 담긴 음원의 주행 속도가 미세하게 빠르다는 점은 옥의 티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사항이지만, 그것이 이 음반의 복각이 주는 의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싸이키델릭 록 음반이란 점에 주목할 수도 있고, 신중현이 당시 밴드의 지향점을 어떻게 레코딩으로 풀어냈는가에 포커스를 둘 수도 있다. 이 음반에 오리지날 버전으로 담겨 있는 "봄비"와 "꽃잎"이 이후 어떻게 다른 버전들로 변모해갔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이 음반이 LP 앞면은 솔로 가수 독집의 형식으로 3-4분 길이의 대여섯 곡을 담고, 뒷면은 그룹 사운드의 즉흥적인 롱 버전 연주를 중심으로 싣는 신중현 식 음반 구성의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다거나, "먼길"의 주요 리프와 리듬이 "아름다운 강산"의 맹아적 형태를 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20020916

<부연>
1. 신중현은 덩키스 활동과 이 음반으로 당시 매스컴에서 '싸이키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든다는 투의 반감이 걸러지지 않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2. 덩키스는 1969년 11월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만 1년여 동안 펄 시스터즈(1968), 이정화, 김추자의 데뷔작과 김상희의 [어떻게 해/나만이 걸었네], 영화 [푸른 사과] OST 음반(이상 1969) 등의 레코딩에 세션을 맡았고, 1969년 가을 시민회관에서 4일간 성황리에 열린 '싸이키델릭 리사이틀 쇼'에도 세션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덩키스 해산 이후, 신중현은 청파동에 작곡 사무실을 열어 직업적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가져간 한편, 뉴 덩키스를 결성해 짧은 기간 활동한 이후 퀘션스를 결성하면서 밴드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였다.

음반 정보
- 음반번호: DG-1033(복각 CD는 SJHMVD-0001)
- 발매일: 1969년 1월 17일(복각 CD는 2002년 7월 6일)
- 레코딩 장소: 마장동 스튜디오. 녹음 기사: 이청.
- 라인업(옆의 설명은 비닐 음반 뒤 커버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필자가 일부 자구 수정했음. 나이와 활동시간에서 오류가 있어 보임)
이정화(보컬): 1년전 신중현이 리드하는 美八軍 노 아웃 쑈에 입단하여 많은 인기를 차지해 왔다. 현대적인 매력과 특색 있는 음색이 특징으로 흑인들의 Soul 음악과 백인들의 싸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올해 22세 釜山 출신)
이태현(베이스 기타): 굉장한 노력가이며 정열적인 Bass Player. 美八軍 쑈 Shouters에서 일하다가 신중현과 3년 전부터 연주해 왔다. R&B 스타일의 권위자의 한 사람.
오덕기(기타): Rhythm Guitar Player지만 코미디에 빼어놓을 수 없는 특기. 4년 동안의 비교적 짧은 음악 생활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25세)
김민랑(오르간): 음악 학원과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써왔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연주 생활이 비교적 짧으나 감정의 호흡이 잘 맞는다. (경희대학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Organ 연주자. 29세)
김호식(드럼): 21세의 제일 어린 나이지만 Drummer로서의 경력은 4년이나 된다. 꾸준한 노력과 재질로 인기를 모으는 실력파다.
신중현(리드 기타): 美八軍 쑈에서 14년간 연주생활 작편곡 연주를 겸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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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19. 19:29
봄비 - 이정화

신중현과 덩키스 - 이정화 (1969)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봄비 - 이정화

1. 싫어
2. 봄비
3. 꽃잎
4. 먼길
5. 내일
6. 마음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기념비적 발걸음

1969 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펼쳐진 '트로트의 시대, 이미자의 독주 체제'는 1969년을 기점으로 흔들렸다. 펄 시스터즈의 "님아"와 "커피 한잔"(모두 레코딩은 1968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소울 가요들이 히트하며 트로트의 아성을 뒤흔들었고, 싸이키델릭으로 분류된 그룹 사운드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4일간 열린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4만 여명의 청중을 동원할 만큼 저변을 확대하고 있었다. 1969년, '소울 & 싸이키'로 명명된 물결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 무렵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가 (통기타/포크와 함께 표출되는) 청년문화를 예고하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메이저리그 스타로 등극했다면, 이 [싫어 / 봄비] 음반은 바로 그 메이저리거들을 키워낸 음악적 산파였던 신중현, 그가 지휘한 밴드들, 그리고 이제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될 마이너리그 스타 가수들의 등장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신중현이 이 시기부터 한편으론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주로 여)가수들을 조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라인업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싫어 / 봄비] 앨범은 신인 여가수 이정화의 데뷔 앨범으로도, 신중현이 이끈 5인조 밴드 덩키스(Donkeys)의 공식 데뷔작으로도 불린다. '누구의 몇 집' 식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음반의 모호한 성격을 대변한다. 기획에 있어서 이 음반은 신중현이 한 가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만든 대중적인 솔로 가수 앨범(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김정미 등의 음반)과, 신중현 자신의 그룹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밴드 앨범(애드 훠, 퀘션스, 엽전들 등의 음반)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이 '일반 무대'와 미8군 쇼 무대를 계속 오가며 활동했던 점, 록 밴드를 지향하면서도 캄보(전기 기타가 주도하는 소편성 연주 밴드)와 패키지 쇼(캄보와 보컬리스트와 무희로 구성된 소규모 쇼)의 그늘에 머물렀던 점이 드러난다. 이정화가 무대용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담은 커버는 이 음반이 패키지 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펄 시스터즈의 데뷔작의 '화사한 커버'와 비교해 보라. 펄 시스터즈의 음반은 피크닉 가는 두 자매의 모습이 상큼하게 연출되어 있다).

음반 커버의 안쪽에 담겨 있는 덩키스와 이정화의 모습

애드 훠(Add 4), 블루즈 테트(Blooz Tet)의 해산 이후 신중현(리드 기타)은 1968년 후반기에 이태현(베이스), 김민랑(키보드), 오덕기(리듬 기타), 김호식(드럼)을 영입해 5인조 밴드 덩키스를 결성하고 미8군 무대에서 '노 아웃 쇼(No Out Show)'라는 패키지 쇼 단체를 이끌었다. 이 패키지 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인물이 이 음반의 주인공 이정화였다. '노 아웃 쇼'가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게 되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일반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1968년 말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이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둘 다 신중현의 창작곡에 덩키스의 연주로 녹음되었지만, 펄 시스터즈의 음반이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가수에 초점을 맞춘 반면(덩키스의 연주는 '반주'이다), 이정화의 음반은 밴드 솔로 가수 음반과 밴드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싫어 / 봄비]는 신중현이 당시 자신의 그룹 사운드(덩키스)를 통해 어떤 음악을 지향했는지를 좀더 투명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다. 이정화와 덩키스가 이 음반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싸이키델릭 록이었다. 물론 소울의 색채가 적지는 않은데, 첫 곡 "싫어"와 두 번째 곡 "봄비"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정화의 보컬은 당시 일반적인 소울 (여)가수들의 열창 스타일과 달리, '밋밋한' 느낌마저 준다(신중현이 당시 조련한 펄 시스터즈, 김상희, 김추자의 다소 허스키하고 당돌한 보컬과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이듬해 퀘션스(Questions)의 음반에 박인수의 보컬 버전으로 실려 히트한 "봄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수의 버전이 감정을 모두 투여하는 진한 소울 음색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이정화의 버전은 낭만과 폭발 대신 각 연주 파트가 어느 한쪽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된다. 이정화의 보컬은 감탄을 자아낼 만한 기교 없이 오히려 다소 불안정한 음정으로 덩키스의 연주에 묻혀 '흐른다.' 그래서 이정화의 "봄비"는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엔가 절정으로 인도한다. 이 곡을 싸이키델릭하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일 공산이 크다. 단지 키보드와 현악 세션 때문이 아니라.

이어지는 "꽃잎"은 좀더 완연하게 싸이키델릭적이다. 퍼즈 기타와 오르간이 장엄하게 나오다 잔잔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로 바뀌는 도입부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리듬은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고,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연주가 강조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일"에도 재현된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이 곡은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출렁이며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딘지 잊게 만든다. 마지막 곡이자 LP의 B면 전체를 차지하는 "마음"은 신중현 식 싸이키델릭의 요체를 담고 있다. 퍼즈 기타가 리드하는 주제 리프가 시종일관 반복되는 사이 총 16분 35초간 본격적인 '약물 여행'으로 이끈다. 이정화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을 수미상관으로, 중간에 즉흥 솔로 연주가 길게 전개되는 구조인데, 2분 47초부터 기타 솔로, 오르간 솔로, 베이스 기타 솔로, 드럼 솔로가 차례로 9분 가까이 전개된다. 특히 와와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7분 여간 펼쳐지는 신중현의 기타 애드립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즉흥 연주이다. "마음"은 음반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70년을 전후해 꽃피운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한 정수(精髓)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 커버의 축소판으로 나온 복각 CD

[싫어 / 봄비]는 당시 소울과 싸이키델릭의 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음반이다. 신중현이 만든 솔로 가수의 음반들이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그를 히트곡 제조기의 반열에 올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것과 달리), 그의 그룹 사운드의 음반은 앞으로도(엽전들의 예외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징조를 보여주었다. 중고 음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될 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음반이 CD로 복각되어 재발매된 것은 한국 록의 잊혀진 역사 그림 중 퍼즐 하나를 끼워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너무 뒤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복각이다. 복각 CD의 커버나 케이스도 비닐 음반(LP)의 커버와 케이스의 축소판이어서 음반의 아우라도 최대한 살렸다. 그렇다고 속지까지 조잡하고 촌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지적은 필요하고, 비닐 원판에 비해 복각된 CD에 담긴 음원의 주행 속도가 미세하게 빠르다는 점은 옥의 티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사항이지만, 그것이 이 음반의 복각이 주는 의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싸이키델릭 록 음반이란 점에 주목할 수도 있고, 신중현이 당시 밴드의 지향점을 어떻게 레코딩으로 풀어냈는가에 포커스를 둘 수도 있다. 이 음반에 오리지날 버전으로 담겨 있는 "봄비"와 "꽃잎"이 이후 어떻게 다른 버전들로 변모해갔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또 이 음반이 LP 앞면은 솔로 가수 독집의 형식으로 3-4분 길이의 대여섯 곡을 담고, 뒷면은 그룹 사운드의 즉흥적인 롱 버전 연주를 중심으로 싣는 신중현 식 음반 구성의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다거나, "먼길"의 주요 리프와 리듬이 "아름다운 강산"의 맹아적 형태를 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각자의 자유겠지만. 20020916

<부연>
1. 신중현은 덩키스 활동과 이 음반으로 당시 매스컴에서 '싸이키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꼭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든다는 투의 반감이 걸러지지 않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2. 덩키스는 1969년 11월 해체되었다. 그렇지만 만 1년여 동안 펄 시스터즈(1968), 이정화, 김추자의 데뷔작과 김상희의 [어떻게 해/나만이 걸었네], 영화 [푸른 사과] OST 음반(이상 1969) 등의 레코딩에 세션을 맡았고, 1969년 가을 시민회관에서 4일간 성황리에 열린 '싸이키델릭 리사이틀 쇼'에도 세션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덩키스 해산 이후, 신중현은 청파동에 작곡 사무실을 열어 직업적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가져간 한편, 뉴 덩키스를 결성해 짧은 기간 활동한 이후 퀘션스를 결성하면서 밴드에 대한 열정을 병행하였다.

음반 정보
- 음반번호: DG-1033(복각 CD는 SJHMVD-0001)
- 발매일: 1969년 1월 17일(복각 CD는 2002년 7월 6일)
- 레코딩 장소: 마장동 스튜디오. 녹음 기사: 이청.
- 라인업(옆의 설명은 비닐 음반 뒤 커버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필자가 일부 자구 수정했음. 나이와 활동시간에서 오류가 있어 보임)
이정화(보컬): 1년전 신중현이 리드하는 美八軍 노 아웃 쑈에 입단하여 많은 인기를 차지해 왔다. 현대적인 매력과 특색 있는 음색이 특징으로 흑인들의 Soul 음악과 백인들의 싸이키델릭 음악을 주로 노래한다. (올해 22세 釜山 출신)
이태현(베이스 기타): 굉장한 노력가이며 정열적인 Bass Player. 美八軍 쑈 Shouters에서 일하다가 신중현과 3년 전부터 연주해 왔다. R&B 스타일의 권위자의 한 사람.
오덕기(기타): Rhythm Guitar Player지만 코미디에 빼어놓을 수 없는 특기. 4년 동안의 비교적 짧은 음악 생활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25세)
김민랑(오르간): 음악 학원과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써왔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연주 생활이 비교적 짧으나 감정의 호흡이 잘 맞는다. (경희대학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Organ 연주자. 29세)
김호식(드럼): 21세의 제일 어린 나이지만 Drummer로서의 경력은 4년이나 된다. 꾸준한 노력과 재질로 인기를 모으는 실력파다.
신중현(리드 기타): 美八軍 쑈에서 14년간 연주생활 작편곡 연주를 겸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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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19. 14:05
저무는 바닷가 - 김추자



저무는 바닷가에 저 배도 떠나고
저 하늘 갈매기도 저 멀리 떠나고

웃으며 걸어 가던 연인들도 다 가고
수많은 발자국만 모래 위에 남았네

나만이 여기에서무엇을 기다리나
밀려 오는 파도만이 발 밑을 적시네

올 사람 갈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나만이 홀로 서서 파도소리 들어 보네

나만이 여기에서무엇을 기다리나
밀려 오는 파도만이 발 밑을 적시네

올 사람 갈 사람도 아무도 아무도 없는데
나만이 홀로 서서 파도소리 들어 보네



2007. 4. 17. 16:47
어떻게 해 - 김상희

김상희 리싸이틀 쑈 (197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회 : 배삼룡,  신중현과 퀘션스, 여대영악단이 세션

1.울산 큰애기
2.대머리총각
3.홍콩의 에레지
4.목포의 눈물
5.써니
6.In My Room

1.커피한잔(고지미자매)
2.사랑의 상처(김상희)
3.어떻게 해(김상희)
4.굳바이(김상희)


김상희는 한국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며 70년 1월 최초의 리사이틀을
개최할만큼 최정상에 올랐다. 이때의 공연실황을 담은 <김상희 리싸이틀쇼-유니버샬,KLH7,70년3월> 음반은 그녀의
최고명반으로 손꼽히는 고가의 희귀음반. 배삼룡이 사회를 맡고 신중현과 퀘션스, 여대영악단이 세션을 맡았다.

이 실황음반의 압권은 2면에 수록된 사이키델릭 향기가
진동하는 7분50초짜리 명곡 <어떻게 해> 퀘션스의 신들린 애드립 연주는 듣는 이의 탄성을 불러낼 만큼 현란함의
극치를 들려준다. 또한 록버전으로 들어보는 색다른 맛깔의 <울산큰애기>도 놓칠수 없는 들을거리이다.

영역을 넓힌 김상희는 젊은이들이 즐겨찾던 무교동의 코파 카바나 클럽무대에 첫 등장을 하며 조선호텔 나이트클럽으로까지 진출, 젊은 남성층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어떻게 해>의 가사내용을 <누워서 해>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개사를 해 부르는 짓궂은 남성들 때문에 개사된 노래가 유행이 되자 처음으로 방송금지를 당하는 아픔을 겪으며 좌절했다.



2007. 4. 17. 15:47
떠나야할 그 사람 - 펄시스터즈

펄시스터스 신중현 & Soul Sound Album (1968)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그 당시 대부분이 그러했듯, 펄 시스터스의 데뷔 음반 역시 동일한 곡들이 순서가 다르게 편집된 이본들이 존재한다.

《님아/사랑을 하면 예뻐져요(신중현과 펄-씨쓰더)》(킹/신향/대지, DG-1013, 1968.12.)(왼쪽)

《님아/샌프란시스코에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펄 씨스더 특선집)》(킹/유니버어살, DG-가-02, 1968)

  떠나야할 그 사람 잊지 못할 그대여
  하고싶은 그 말을 다 못하고 헤어져
  사무친 이 가슴 나 혼자 나 혼자서
  숨길 수 없어요 숨길 수 없어요
  오 ~ 붉은 태양 변함 없이 뜨겁게 타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도 흐르는데
  보내야 할 내 마음 잊어야 할 내 마음
  맺지 못할 그 사람 눈물만이 가득해
  사무친 이 가슴 나 혼자 나 혼자서
  숨길 수 없어요 숨길 수 없어요

떠나야할 그 사람 - 펄시트터즈


A01.펄-님아
A02.펄-떠나야할 그사람
A03.펄-두 그림자
A04.펄-커피 한잔
A05.펄-비밀이기에
A06.펄-알고 싶어요
B01.연주곡-사랑을하면 예뻐져요
B02.연주곡-빗속의 여인
B03.연주곡-Unchain My Heart
B04.연주곡-키다리 미스터김
B05.연주곡-옆집 아가씨
B06.연주곡-내 청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트남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이듬해 봄, 나에게도 전기가 찾아 왔다. 펄 시스터즈(배인순, 인숙)가 ‘넉 아웃’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미 8군 무대에 서고 싶었던 ‘펄’은 원래 유니버살 소속이었다(주: 신중현은 화양 소속이었다). ‘펄’은 그러나 일반 패키지 쇼단에서 늘 하던 형식이 아닌, 새 시대의 록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서도 막 뜨던 사이키델릭 록의 표상인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가 ‘펄’의 목표였다. 문제는 자신들이 그 곡을 부를 수 있게 만들어 줄 편곡자였다. 나는 수려한 외모가 받쳐 주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 성공을 직감했다. 일이 끝난 새벽 1시에야 시간이 났지만 나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해 마장동 유니버살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시켰다. 사이키델릭 록을 한국적 가요와 접목시킨 ‘커피 한 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등 일련의 명곡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나의 이력서 신중현: <10>‘펄’과의 영광」, 『한국일보』 2003년 2월 26일)

베트남행을 확정했던 신중현에게 펄 시스터스는 기념음반이라도 내자고 부탁하게 되었고 이상에서 언급한 곡들을 음반에 담아 1968년 12월 킹레코드에서 발표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 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펄 시스터스의 데뷔 음반에 붙은 부제들을 살펴보자. ‘신중현 작편곡집’이라는 문구 외에 ‘Soul Sound Album(킹/신향/대지, DG-1013) 혹은 ’Soulful Pearl Sister Hit Album‘(킹/유니버어살, DG 가 02)이 있다. 바로 펄 시스터스와 함께 등극한 영광의 음악 스타일은 ‘소울 & 사이키’, ‘소울·사이키’이다. 1969년은 ‘소울·사이키 가요’가 폭발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펄 시스터스를 통해 화려하게 개화하기 시작한다. 이후 트로트 가수조차 소울 혹은 사이키 사운드를 표방한 노래를 만들기 시작할 정도로 유행이 되었다.

②소울 선풍 및 사이크데릭 사운드의 도입: 「님아」「커피 한잔」(신중현 작곡) 등을 불러 소울 붐을 일으킨 펄 시스터즈는 이 곡의 히트로 어느 때보다 눈부신 각광을 받았다.(「1969년 가요계의 10대 뉴스」,『주간한국』 1969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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